안녕하세요. 두 번째 장편을 마무리하고 다시금 후기로 인사드립니다. 전작을 읽어주신 분도, 또 <유스티티아 엘레지>로 처음 만나게 된 분들도 모두 반갑고 감사합니다. 경력이 짧은 만큼 글을 시작할 때는 늘 '끝까지 쓸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도 일단은 또 한 소설을 마무리 지었다는 것이 뿌듯하네요. <유스티티아 엘레지&g...
코르둘라와 능소화 1화 굽은 허리를 도무지 펼 수가 없다. 책상에 한쪽 뺨을 댄 채로 억지로 연필을 굴려보지만, 나중에 수정하자 타협한 한편으로 거의 새로 써야 할 정도로 엉망이 되어 감은 스스로도 자각한 바이다. 마감이 사흘 후였던가……. 부지런한 동기는 이틀 전에 과제를 마쳤으며 포기한 이들은 아예 일 년 더 수학하자며 뛰쳐나가 버렸다. 레지나로 말할 ...
방에 들어서는 순간, 아부토는 굳고 말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이 그를 기다렸다. 활짝 열린 창을 바람이 타넘었고 레이린의 머리칼은 환상처럼 나부꼈다. 그녀는 상처 입은 적도 없다는 듯이 꼿꼿하게 섰다. 맨다리에 남은 불그죽죽한 흉터만이 유일한 증거인데 그조차도 아주 오래전의 것인 듯 딱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어떠한 상태로 이 방에 들어왔는...
목을 졸랐다. 늦은 오후는 고요했다. 지빠귀가 우는 소리, 아래층에서 동생이 식탁을 치우는 소리, 방 한편에서 약이 끓는 소리. 그토록 소란한데 세상이 조용한 것만 같았다. 그가, 아버지가,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힘을 주지도 않았는데,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숨넘어가는 소리조차 없었다. 아버지는 눈을 감지조차 않았다. 갈색 눈은 무심...
행복으로 충만하기란 대체로, 비참해지기보다 어렵다. 인간은 그러한 삶을 산다. 레이린은 개중에서도 특히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의구심이 들 때면 그녀는 지난 삶을 되짚어보곤 하였다. 모두 더해도 서른 해가 되지 않는 생은 여러 사건이, 순간이 쌓여 이루어진 것이었다. 진흙을 퍼내듯 기억을 헤집으면 생은 둘로 나뉜다. 첫 번째 삶은 그 끝의 참담함으로 불행...
소란한 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현관문을 부서져라 두드리고 있었다. 노인은 잠에서 깨었다. 심야에 무슨 경우 없는 짓이냐며 투덜거리면서도 그는 지체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사와 약사를 겸한 무면허 영업을 한 지도 40년이 가까웠다. 밤중에 찾아오는 손님은 수도 없이 있었고, 밥은 성실해야만 벌어먹을 수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한 남자가 안으로 뛰어 들어왔...
비가 왔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비는 왔다. 계단을 올랐다. 빗물에 온몸이 젖어도 신경이 쓰이질 않았다. 이 정도로는 흔들릴 수도 없다. 발소리마저도 흥이 난다. 때가 왔는데 화를 낼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복수의 때인지 마땅한 죽음을 맞이할 기회인지, 그런 것, 모든 것은 아무래도 좋을 만치 홀가분했다. 이제 더 이상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위선 뒤로 ...
자신이 택했던 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는 그날에서야 알았다. 바닥에 번지는 붉은 웅덩이 위로, 가지런히 놓인 팔다리가 눈 맞은 자작나무 가지처럼 희고, 가느다랗다. 비명은 피보다 진하며 끌려 나온 아이는 어머니의 몸처럼 희다. 악당. 위선. 마주한 눈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깊은 분노와 절망을 잡아먹으면서 스스로를 사르고 있었다. 자그마한 입술에서 터져 나...
“나도 데려가! 왜 매일 둘이서만 나가는 거야?” 이제 말을 제법 잘하는 카구라가 허리를 잡고 매달렸다. 떼어놓고 가려 해도 워낙 힘이 세다 보니 한번 붙잡히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카무이는 곤란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평소 같으면 본인이 단호하게 말해서 두고 갈 텐데 오늘은 태도가 조금 달랐다. 간밤의 일이 떠오른다. 카무이는 제 어머니와 요즘 자주 상...
계획이라. 이름만 붙은 구상은 초라하고 보잘것없다. 손끝까지도 아름다웠던 엔시스 파윌라가 자신과 함께 가자고 권했던 순간, 그 선택지는 이루 말하기 힘들 정도로 달콤했다. 말하지 않았나. 나는 많은 순간 구원자를 원했었다고. 그 형태는 다양하다. 진부하게는 백마 탄 왕자이고 다르게는 체념하였던 죽음이다. 천사가 정말로는 아름답지 않을 수야 있겠지만, 그는 ...
시간은 기억 위에 앉기 마련이라는 생각을 했다. 기다림에 바위는 부서져 모래먼지가 되고 모래먼지는 쌓여서 사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거기에 파묻혀 죽든 익어서 죽든 괜찮아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그런 생각을, 했다.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면 어리석음이다. 잊고 싶다 바라는 한편, 나는 끝없이 제 손으로 그 먼지를 털었다. 오늘도 그렇다. 그 광경은 선...
1. 두근거렸다. 그는 자기 심장이 그렇게 세차게 뛸 수 있단 사실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알았다. 얼굴엔 피가 몰리고 귀에선 이명이 울리고 오직, 맥박 소리만 또렷했다. 처음에는 초침 소리에 박자를 맞춰, 잠시 후엔 그마저 따라오지 못 할 만큼 빠르게. 이마에 올린 손까지 달아오르고 있었다. 왜일까, 노을은 하늘에도 불이 붙은 듯 어제보다 더욱 붉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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